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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모으다-메두사의 방
박이선 (서울시립미술관 큐레이터) 2011

 

전시장에 들어서면 보는 이는 작품의 크기로 인해 우선 압도되며 더불어 무거운 느낌의 음악이 흐른다. 화면에 클로즈업 되어 있는 여성은 대개는 눈을 감고 있지만, 간간이 눈을 뜨고 있는 설정으로 인해 죽은 듯 또는 소생한 듯한 이미지를 동시에 접하게 되어 혼란스럽다. 여인은 고요히 누워 있으며 흔들리는 촛불과 공간구성으로 인해 음악이 흐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괴괴함이 느껴진다.

 

작가의 근작으로 구성된 <빛을 모으다-메두사의 방>전은 2010년 4회 개인전 <빛-나를 베다>전 이후의 이야기이다. 이번 개인전과 지난 <빛-나를 베다>전의 작품들은 언뜻 피로 얼룩진 죽음의 향연을 펼치고 있는 듯 보이나 여성을 바라보는 작가의 내면적 시선에 관한 이야기이다. 남녀의 구분을 떠나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 아름다운 존재를 자신의 손끝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본능일 것이다. 작가의 여성에 대한 관심은 학창시절 마음에 둔 여인을 드로잉 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여성에 대한 통찰과 철학을 5차례의 개인전을 통해 보여 주었고, <빛-나를 베다>전을 통해 절정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여성을 표현하는 매개로써 그리스 신화 속 메두사와 햄릿의 연인 오필리아 등을 취하고 있는데 그녀들은 팜므파탈적인 여성 또는 성녀 등을 표상하고 있으며 각각의 스토리를 통해 그들의 비극적인 말로를 보여준다. 팜므파탈, 성녀의 이미지 등은 결국 ‘관능’으로 귀결되며 이는 남성(남성인 작가를 통해 발현되는)의 이성상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누워있는 여성의 긴 머리카락은 굽이치는 뱀의 형상(메두사의 머리처럼)을 보이는데 작가는 흑연가루로 만든 작가만의 안료로 더 깊은 색을 입히며 샌딩된 철의 빛나는 부분과 극적인 대비를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설정에 따라 누워있는 여성으로 표현되는 그의 여인들은 눈을 뜨기도 혹은 감기도 하고 있지만 실상은 죽은 여인들이다. 잠든 듯 누워있는 여인은 눈을 뜨고 먼 곳을 응시하는 설정을 통해 작가는 의도적으로 불편함을 야기시킨다. 그의 제단이 편안한 의식을 치루는 것이 아니라는 듯이 말이다.

 

소유를 위한 반복, 집적

작가의 작품들은 ‘그림을 그린다’고 보기보다는 작가만의 의식을 치루는 전 과정을 작품이라고 보는 편이 더 적합하다. 제단에 여인을 올려 의식을 치루고 봉인하는 과정까지 그만의 제의적 의식 전 과정을 살펴보면 그에게 여성이란 편치 않은 대상인 듯하다. 그는 자신의 첫사랑 혹은 누드모델을 사진의 대상으로 삼는데 대상으로서의 여인은 침대에 머리를 풀어 헤치고 눕는다. 포즈를 취한 대상을 작가는 위에서 내려다보며 플래시를 터트려 사진으로 촬영한다. 사진으로 찍은 여인을 포토샵을 통해 레벨 값을 조정하고 사진조각 수백장을 모아 2미터를 훌쩍 넘는 그림의 크기로 만든다. 이를 아날로그식 복사기를 통해 흑백으로 출력하고 그 종이에 시너를 발라 부식된 철판에 문질러 찍혀 나오게끔 한다. 그 위에 아크릴 미디엄을 바르는데 이 때 붓터치를 살려 회화적인 요소를 삽입한다. 미디엄이 마르면 작가가 제작한 흑연안료로 필요한 부분을 덧칠해 대비적인 요소를 강하게 드러나게끔 한다. 그 이후 우레탄 투명 또는 투명 펄 페인트를 덧바르고 뿌리는 과정이 반복되는데 이 과정이야말로 이전의 노동집약적인 과정을 마무리하는 단계로, 그의 작업 중 가장 상징적인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액질의 우레탄 페인트는 다각적인 의미를 내포하는데 여성의 상징인 물을 표현하기도 하고 여성의 체액, 남성의 정액 등을 상징하며 직접적으로 욕망 덩어리를 뿌리는 과정인 것이다. 이로 인해 작품 속 여인을 상징적으로 소유하게 된다.

 

절정, 그 이후

이번 전시 이전을 담은 <빛-나를 베다>전의 작품에서 보이는 칼을 휘두른 흔적이라든지, 칼날의 번쩍임 등의 일차적인 요소들은 어떠한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분노를 보여주는 듯하며 여성에게서 흘러나왔을 또는 여성을 벤 칼날에서 떨어졌을 흩뿌려진 피, 쇠로 만든 못을 박아 봉인하는 행위 등에서 그녀의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소유하고자 함을 읽을 수 있다. 전작들이 칼날 끝에 선 불안감과 공포감 등을 보여주었다면 이번 전시작들은 절정 이후에 대해 한 발 물러서서 말하고 있다. 그가 그리던 핏자국, 칼날의 섬뜩함은 국화꽃과 여인의 붉은 옷으로 다소 진정되어 표현되었다. 그녀들이 입고 있는 붉은 옷과 국화꽃 그리고 흔들리는 촛불은 극도의 초조함, 공포 등을 은연중에 보여주며 절정 이후의 상황의 묘한 긴장감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긴장감의 표현은 그의 그녀들은 죽은 몸, 즉 주검이기 때문이다. 그녀들의 초점 없는 눈은 편안한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공포와 불편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가가 구성한 공간은 그가 모티브로 삼고 있는 메두사가 살고 있는 신전처럼 음습한 분위기에 흔들리는 불빛까지 더해져 생경한 다초점의 시각을 야기한다. 작가는 시인 울프의 시 <상처>를 인용하는데 ‘칼로 도려 선혈 낭자한 기억 위에 너를 새긴다...풀리지 않는 주술로 너를 묶는다...아물지 않는 상처 날마다 흘리는 피로 너를 추억한다...’ 등의 문구를 그대로 작품에 반영하고 이들 작품 속 여인들은 제한된 공간에 무방비로 누워있게 하거나 관 같은 틀에 가두는 행위 등으로 풀어낸다.

 

대부분의 남녀는 누군가를 보고 설레어하기도 하고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이렇게 가슴이 뛰며 그 또는 그녀에게 반하는 과정이 각자가 내면에 지닌 심혼이 현실의 대상에게 덮여지기 때문이다.(아니마 아니무스 원형적 투사: 정신분석학에서 남성이 내적으로 가지고 있는 여성의 특질을 아니마, 여성이 내적으로 가지고 있는 남성의 특질을 아니무스라고 한다. 아니마 ·아니무스는 자아를 마음 속 깊은 층에 도달하게끔 해 준다. 이는 페르소나와 대비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으며, 융은 제엘레(Seele, 심혼)이라고 표현하였다.) 그의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그의 마음속 분노와 사랑했던 그녀에 대한 애증의 표현으로 받아들였으나 그의 작품은 여인이라는 한정된 대상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작품들은 그의 삶 전체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의 마음 속 아니마의 발현이라는 생각이다. 그의 작품의 크기, 재질, 소재의 강렬함에 압도되며 장대한 치정의 스토리에 빠져들면 그의 작품에 숨겨진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남녀의 러브 스토리, 제 마음과 같지 않은 상대가 미우면서도 애절하고, 저주스럽지만 사랑했던 남녀의 이야기이다. 사랑이란 비논리적 감정, 사랑의 유효기간이 있다는 등의 증명할 수 없고 보이지 않는 감정인 사랑에 대한 비하 또는 반박 논리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살이의 한 부분임을 부정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랑을 향한 욕망어린 시선은 갇히는 여인을 희생자로, 봉인하는 자를 가해자로 만들며 삶과 죽음, 사랑과 욕망 그리고 생성과 소멸 등 삶의 한 양상을 만들어 내며 이러한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양태가 삶, 바로 그 자체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죽음과 소생의 경계를 작가적 안목으로 읽어내는 그의 다음 행로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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