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고함과 희망이 넘치는 ‘빛의 제단’을 세우다
류동현 (미술칼럼니스트 미술사) 2012

 

부끄럽지만, 조현익의 작품을 얼마 전에야 접했음을 고백할 수 밖에 없겠다. 여름에 열린 기획전 <히어로전>과 관련해서(당시 나는 이 전시에 대한 기획 협력을 맡고 있었다) 4명의 참여 작가들 중 한 명이었던 조현익의 작품을 처음 보았던 것이다. 작업실에서 처음 본 그의 작품은 시각적 충격이었다. 작은 작업실에 걸려있는 커다란 스케일의 ‘철판’ 그림과 무언가 설명하기 어려운 ‘흑마술’적 공간 아우라에 압도되고 말았던 것이다. 여기에 그의 그림 속 여인의 화면 밖 나를 뚫어져라 응시하는 눈빛은 필자로 하여금 ‘메두사’의 눈빛을 받아 돌이 된 그리스 신화 속 사람처럼 몸을 경직되게 만들 정도였다. 미술이 시각 예술이라는 측면에서 그의 작품은 충분히 시각적 충격과 아름다움을 주었다.

 

1978년 출생인 그는 이미 다섯 번의 개인전을 열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얼마 전 처음으로 그의 작품을 접한 필자가 부끄러움을 느낄 수 밖에. 많은 비평가가 그의 작품에 예리한 비평을 전해주었기에, 여기에 내가 또다시 그의 작품에 대해 비평을 더 하는 것이 별 의미는 없어 보인다.

 

개인적으로 조현익의 작업 세계는 처음에는 일견 통속 연애소설의 흐름 같다. 마치 최근 여성 독자들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그레이’ 시리즈처럼. 그러나 어느 순간, 그의 욕망 속 통속 연애소설은 깊은 슬픔 속 삶과 죽음이라는 실존주의 소설로 변모한다. 그리고 이제 그의 작품은 흡사 19세기 고딕소설 분위기를 띄고 있다. 아마 이 흐름은 그의 연애사와 맥락을 같이 하기 때문일게다. 이번 공개워크숍을 위해 그의 작업을 몇 가지의 키워드로 정리해보고 앞으로 그의 작업 행보를 예측해 보는 것은 어떨지.

 

욕망과 사랑

여자에게 관심이 없는 남자가 있을까? 조현익에게 여성은 작업 초기부터 욕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여성에 대한 욕망은 서투른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다. 연인을 소유하고픈 욕망, 그는 이를 사랑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7여 년간 사귀었던 초등학교 동창이었던 여인이 있었다. 그의 욕망은 침대에 누운 연인을 사진을 찍으면서 시작된다. 마치 사진 촬영을 통해 영혼을 사로잡는다는 미신처럼, 그는 플래시를 터트려 연인을 사진 찍고 포토샵 과정을 거쳐 거대한 철판에 마티에르가 남아있는 그림으로 전환시킨다. 회화를 전공한 그의 손맛은 거대한 철판의 회화를 통해 잘 드러난다. 물성이 있는 철판에 그는 다양한 매체와 방식을 통해 자유자재로 그림을 그린다. 마지막에 그는 투명 우레탄을 통해 남성의 정액과 같이 욕망의 분출구를 완성시킨다. 사랑과 욕망이 혼재된 이러한 작품은 그러나 7년 연인의 배신으로 끝을 맞이한다.

 

배신과 절망, 증오와 복수

연인의 배신은 그의 기존 작업에 좀 더 어두움을 드리웠다. 배신의 절망으로 인해 작품 속에 여성에 대해 더 강한 증오의 욕망을 드러낸다. 여기에 그는 여인을 베는 이미지로 복수를 감행한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자신에 대한 자해다. 여인을 베는 것은 칼이 아니라 빛이다. 빛의 칼과 붉은 피는 증오와 복수라기보다 슬픔의 역설적 표출이다. <빛-나를 베다>는 빛과 피, 밝음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자신의 증오와 절망을 극한까지 몰고 간다. 이를 통해 그는 구원을 얻고자 한다. 이에 대한 작가의 극단적인 심정을 대변하는 작품이 여인이 그려져 있는 관이다. 슬픔과 절망은 죽음을 통해 구원을 얻는다.

 

상처와 두려움으로 승화한 팜므파탈

사랑의 배신은 작가에게 여자라는 존재를 전혀 알 수 없는, 혼란스러움으로 인도했다. 이제 여자는 사랑과 욕망의 대상이 아닌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두려움은 경외심을 낳는다. 그리고 경외심은 신성함으로 연결되었다. <메두사>라는 팜므파탈의 존재가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수많은 갈래의 머리칼은 메두사의 얼굴을 휘감고 있던 뱀의 형상과 다름아니다. 이 존재에 대한 두려움과 신성시는 사원의 제단으로 확장되었다. 팜므파탈의 메타포인 흡혈귀가 제단 주위를 돌아다니듯, 그의 작품은 철판 회화에서 사원 공간으로 확장되어 간다. 성적 메타포로서의 촛불 그림을 그려왔지만, 이제는 실제 촛불과 철판 오브제의 구성으로 전시장은 하나의 사원이 되었다. 흡사 19세기 고딕소설 속의 배경을 보는 듯, 그의 작품 분위기는 묘한 어두움과 음습함이 휘감게 되었다. 제단과 팜므파탈의 대비는 성(聖)과 속(俗)으로 대변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블로그에는 ‘위딘 템테이션(within temptation)이라는 고딕메탈 그룹의 노래가 끊임없이 무한반복된다. 제단으로 둘러싸인 ‘메두사의 방’을 나갈 수 있는 출입구를 찾을 수가 없듯이. 이렇듯 <빛을 모으다-메두사의 방>은 성과 속이 혼재해 끊임없이 순환하는 ‘우로보로스’의 공간이다.

 

“희망은 좋은거죠, 가장 소중한 것이죠, 좋은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가 형무소에서 레드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현익에게 지난 작업은 점점 다크 사이드로 빠져드는 다스베이더처럼 욕망과 사랑과 배신과 슬픔, 두려움을 표출하는 해방구였다. 그러나 최근의 작업에서 좀 더 다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태국 여행 때 방콕의 어느 한 사원에서 발견한 부처와 누드여인 조각상 오브제가 시작이었다. 이를 통해 탄생한 작품이 바로 <왕의 힘>. 성과 속의 충돌을 좀 더 위트있게 비튼 작품이다. 지난 작품들의 음습함이 걷힌, 좀더 밝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작가는 11월에 예정된 중국 여행에서 좀 더 발전된 모습의 설치 작품을 구상 중이다. 내밀한 개인 연애사에서 좀 더 확장된 인간상과 역사로 작업의 외연을 확장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듯 나는 앞으로 보여줄 ‘빛의 제단’이 있는 사원이 좀 더 밝은 느낌의 사원으로 변모했으면 좋겠다. 그가 이제는 과거의 욕망과 배신과 슬픔에서 벗어나, 다양한 삶의 즐거움과 사랑의 희망을 찬양하는 그런 사원 말이다.

 

공포소설의 대가 스티븐 킹은 ‘사계’라는 연작 작품에서만 ‘공포’의 요소를 뺀 것으로 유명하다. 그 중 ‘봄’편이 앞에 이야기한 <쇼생크 탈출>이다. 앤디 듀프레인이 찾았던 희망의 땅 ‘지후아타네호’를 찾아가면서 레드는 이렇게 말한다. “부디 국경을 무사히 넘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내 친구를 만나 따뜻한 악수를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태평양이 내 꿈에서처럼 푸르름으로 가득하기를 희망한다. 나는 희망한다.” 그가 진정한 사랑에 빠져 희망이라는 사랑으로 더 나아갈 때, 그의 작업 세계는 더 광활한 제 2막을 만들어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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