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c. 기타 (평론글 모음)
이진명 (독립큐레이터) 2012

 

조현익 작가는 차가운 금속 표면에 시크한 여성의 이미지를 극화시키는 젊은 작가로 부각되고 있다. 작가는 회화의 정격성(authenticity)에 대한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회화의 영역확장가능성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을 한다. 작가가 나타내려고 하는 주제는 여성이다. 그것은 여성에 대한 신성(神性)의 의미를 회복시키고자 하는 원초적인 노력과도 같다. 여성성과 대비되는 차가운 메탈의 표면에 여성의 가장 에로틱한 얼굴표정을 그려낸다. 그러나 작가의 구성에서 에로스로 일관되는 삶의 격정과 또 다르게 불길한 죽음의 분위기가 엄습해온다. 성(聖)과 속(俗)이 둘이 아니고, 삶과 죽음을 시간 속에서 구분할 수 없으며, 아름다움과 추함은 서로를 돋보이게 도와주듯이 작가의 작품 속에서는 대비되는 속성들이 서로 밀고 당기는 가운데 팽팽한 긴장을 이룬다. 노자의 '난이상성(難易相成)'이라는 말은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를 완성시킨다."는 뜻이다. 금속 표면의 차가움과 여성의 따뜻한 체온의 대비는 서로 다른듯하지만 영원히 한 몸일 수밖에 없는 죽음과 에로스의 변증적 이중주를 완성시킨다.

 

 

이선영 (미술평론가) 2011

 

2011 하반기 아르코미술관 전문가과정

조현익의 작품에는 사랑과 욕망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그러나 그 드라마는 해피엔딩이 아니라 피 흘리는 전쟁이며, 여자든 남자든 어느 하나는 희생되어야 끝나는 잔혹극이다. 그의 작품은 같은 남성에게는 카타르시스를, 상대편 여성에게는 불편함을 준다. 오필리아나 메두사 같이 신화 속 여성 이미지로 분장한 모습만이 그녀들의 수난을 견딜 만 한 것으로 만든다. 사랑이 누군가 희생물이 되는 잔혹극이나 수난극으로 변모되는 것은, 한 개인의 이러저러한 경험을 반영한 것이기 보다는, 그자체가 끝내 붙잡기 힘든 신기루 같은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사랑과 욕망이 완전히 충족되는 순간은 아마도 죽음일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잔혹극의 무대는 희생 제의가 수행되는 방처럼 연출된다. 당혹스러운 제의실은 현대성을 멀리 거슬러 올라가, 빛과 어둠이 대결하는 고딕적 분위기로 채워진다. 어두운 조명, 흔들리는 촛불, 거대한 창이나 단두대처럼 위에서 내려오는 육중한 철제 샹들리에, 무겁게 깔리는 음악 등은 희열에서 죽음에 이르는 사랑의 단계들을 구현하는 여성의 도상과 함께 총체적으로 작동한다. 녹슬고 갈아낸 철판 사이로 드러나는 여성상들은 팜므 앙팡부터 팜므 파탈까지 다양한 계열을 이룬다. 제의적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촛불들은 불타오르면서 사위어가고, 붙잡으려면 꺼져버리는 주제와 내적으로 연관된다.

 

 

고충환 (미술평론가) 2012

 

조현익,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결합. 죽음은 삶의 그림자이다. 그림자는 모든 존재에 딸려있다. 그런 만큼 유독 삶이라고 해서 그림자가 없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죽음이 없는 양 살고, 최소한 내 일이 아닌 양 살아간다. 그림자는 잠시도 떼어놓을 수가 없는데, 매순간 자기의 존재를 알려오는데도 그렇다. 아마도 삶의 관성 때문일 것이다. 죽음이 삶의 그림자라고 한다면, 타나토스는 에로스의 그림자에 해당한다. 죽음의 베일이며 처벌의 베일을 드리우지 않은 에로스는 없다. 욕망은 금지로 인해 강화된다. 금지가 없으면 욕망도 없다. 유혹하면서 금지하는 것, 금지하면서 유혹하는 것이 욕망의 준칙이며 아이러니이다.

 

조현익의 그림엔 여자가 등장한다. 작가 자신의 자전적 경험에서 유래한 여자는 에로스를 상징하고, 타나토스를 상징하고, 유혹하면서 금지하는 욕망의 이중성이며 양가성을 상징한다. 작가는 여자를 떠나보낸다. 죽은(마음으로부터 지운) 여자를 위해 촛불을 밝히고 국화꽃을 바친다. 이런 제의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선뜻 떠나줄 것 같지는 않다. 작가의 뮤즈(예술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한동안 욕망의 화신이며 죽음의 화신은 이처럼 뮤즈가 돼 작가의 삶이며 예술을 맴돌 것 같다.

 

 

고충환 (미술평론가) 2010

 

에로스와 타나토스, 욕망의 이중주

침대 위에 마구 흩트려져 있는 여성의 머리카락. 그 여성은 흡사 메두사 같고 팜므파탈 같다. 둘 다 유혹과 처벌이 합체된 이율배반적인 욕망의 화신들이다. 여성을 매개로 한 작가의 작업은 삶과 죽음, 삶의 충동과 죽음충동,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상호 작용하는, 인문학의 숨 막히는 한 지점을 예시해준다. 작가는 아예 관을 도입하기도 하는데, 실제의 관에 비닐을 깔아 방수 처리한 다음, 그 안에 물을 채우고, 모델이 드러누워 포즈를 취하게 한 것이다. 흡사 <햄릿>에 등장하는 비극적인 여주인공 오필리아의 죽음을 연상시키는 이 일련의 작업들에서 작가는 낭만주의의 상징적 유산을 계승한다. 낭만주의 그림에서 오필리아의 주검은 마치 물속에 잠겨 영원히 잠든 것처럼 묘사되며, 여기서 물은 혼돈과 여성성(아니마), 죽음과 재생을 상징한다. 그리고 작가는 여성의 주검 위에 피(희생제의와 죽음을 상징하는)와 정액(재생을 상징하는)을 뿌려 그 신화적 의미(여성은 신성한 혼돈을 상징한다는)를 완성한다. 여성 자체라기보다는 자연과 주술, 욕망과 무의식을 상징하는 이 여성들을 매개로, 작가는 어쩌면 신성한 혼돈을 복원하고 재생시키고 싶은지도 모를 일이다. 그 기획은 잃어버린, 혹은 잊혀진 감성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신 감성주의로 명명할 수도 있겠다.

 

Kho Chung-hwan (Art Critic) 2010

 

Eros and Thanatos: The Duet of Desire

The tangled up hair of a woman laying on the bed. The woman is like Medusa or femme fatale. They are both embodiments of desire, a contradictory union of temptation and punishment. The works of Hyun-ik Cho speak through the medium of women, illustrating a breathtaking branch in the Humanities where the impulse of life and death and Eros and Thanatos reciprocate. The artist uses actual coffin in his work, lining it with vinyl, filling it with water and posing a woman in the coffin. As if to suggest the death of Ophelia, the tragic female character from Hamlet, his works perpetuates the symbolic legacy of Romanticism. In a Romanticist painting where the corpse of Ophelia is depicted as if to pose an eternal rest in the water, water symbolizes chaos, femininity (anima), death and rebirth. Any by spilling blood (symbolizing sacrificial offering and death) and semen (symbolizing rebirth) on the body of the woman, the artist completes the mythical meaning (women as emblem of sacred chaos). Perhaps the artist desires to restore and resuscitate the sacred chaos through using women as a symbol of nature and spell, desire and subconsciousness. Such intent that aims at the lost or forgotten sensitivity might term his work a type of neo-sensual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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