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승화된 열병
고원석 (서울시립미술관 전시과장) 2019-20

 

영성의 무분별한 소환과 현현은 아마 질곡과 부침(浮沈)으로 점철된 한국사회의 특수한 근현대사에서 기인할 것이다. 근대는 이곳에서 계몽과 이성주의의 과정을 생략하고 또 하나의 영성의 모습으로 포장되어 폭풍처럼 밀어닥쳐왔다. 그리고 그러한 근대의 질주가 행사한 폭력에 직면한 나약한 개인들 또한 새로운 영성의 아우라 속에 스스로를 위치시키며 생존을 부지해온 것이다. 그러한 습성은 유전자에 깊이 각인되어 시대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모습으로 여전히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조현익이 스스로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의 작업은 ‘성스러운 속성’에 대한 지속적인 사유의 결과들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동시대미술이 흔히 취하고 있는 방식, 즉 영성을 특정한 주제로 인식하고 연구하는 유형의 작업이 아니라 스스로를 경도시키는 무형의 속성에 대한 강렬한 매혹의 경험에서 시작하여 일상의 풍경 도처에 편재하는 영성 혹은 주술적 요소들에 대한 반응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조현익의 그 열병은 이성에 대한 관음증적 집착에서 시작하여 종교적 신성의 구조로 확장되고, 다시 여행이나 일상의 풍경 속에서 발견한 신성의 속화된 형식들에 이어 마침내 육아를 병행하는 자신의 현재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구조에의 적용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면면히 이어지는 그의 작업적 특징은 그 대상을 멀리에서 찾지 않고 바로 여기에서 자신에게 행사하고 있는 것에서부터 찾아나간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상적 미학에 대한 작가적 취향에서 기인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일상을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체질적으로 갖고 있는 강렬한 의욕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다. 자신의 정신을 지배하는 주된 관심사를 보다 에너제틱하게 대하려는 특유의 체질은 결국 그 대상의 일반적인 인식을 넘어 영성의 단계를 부여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열병이 믿음으로 승화되는 구조는 결국 작가 특유의 체질이 영성을 호출하는 사회적 구조로 확대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가 속해있는 이 사회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도처에 영성이 출몰하고 충돌하는 시대와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확대의 기전은 그의 작품의 형식적 특징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회화를 전공했고, 그것을 작업의 시작으로 삼고 있으나 그의 작업의 결과는 매번 복합매체를 이용한 설치의 형식으로 귀결되었다. 즉 이미지의 구현보다 그 이미지가 발산하는 속성을 보다 효과적으로 드러내는 일종의 구조를 구축하는 시도를 매번 보여 온 것이다.

‘작가발굴프로젝트’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조현익은 이미 두툼한 이력을 쌓은 작가다. 그의 작업들은 직설적인 형식 속에 보편적인 이해의 틀을 초월하는 주제적 층위를 가져왔다. 그의 가장 최근의 작업은 이전의 것들에 비해 스스로가 처한 일상의 풍경을 보다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기도 하다. 그 일상은 다분히 동시대를 지배하는 자본에 의해 구획된 일상이기도 하다. 그러한 구획은 다양한 사람들의 일상을 놀라울 만큼 균질한 것으로 탈색시켜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이를 뒤집어보면 그가 다루는 관심사들은 그만의 것이 아니라 대단히 많은 사람들도 공감하는 보편적인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보편성의 토대 위에서 앞으로 작가가 어떻게 그만의 특별한 의미구조를 시도할 것인지 관심 있게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 2019-2020 수원시립미술관 작가발굴프로젝트 SIMA FARM 공동워크숍 일환으로 집필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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